새 쑥 새 쑥 청계산이 겨울을 달려와 얼음 녹은 계곡물에 빠졌다. 겨우내 세상먼지 다 품더니 용케도 푸른 솔잎이 제 몸부터 씻어낸다 지난 해 떨어진 낙엽들이 마른 몸을 부수고 또 다시 나무를 오르려 하는데 밟히고 어그러진 돌 틈 사이로 여린 새 쑥이 바람을 움킨다. 오르는 길에 만났던 아이 하나가 용케도 나를 알아보고 히죽 웃는다. 2009. 3. 14 양수리 수양관에서 일반시 2018.04.12
봄 날의 꿈 봄날의 꿈 (부제 : 전주 가는 길) 구부정 언덕길에 늙은이가 서있다. 걸어온 저만치를 되돌아 아스라이 그 때를 바라다본다. 까불대던 고샅에 엿장수 고무신짝이 바쁘고 기찻길 너머 포플러 휘 도는 신작로 길에 세 여인이 손을 흔든다. 엄마, 할매, 고모 아이고! 이 띵깡쟁이 내 새끼야 ! 고운 눈웃음 웃으며 마중 나온다. 나는 아이가 되고 울다가 어제처럼 전주 가는 버스에 오른다. 2010, 3, 23 초고 일반시 2018.04.12
아내 아 내 당신은 시인이 되었구려. 스무 살 검은 머리 무던히도 사십년을 빗고 빗더니 하이얀 빗질 자국이 생기셨구려. 아프고 시리던 가슴 삭이고 치미는 내 눈물 닦아주면서 두 손으로 감싸고 맞잡고 기도하자고 그리 살다가 어느새 새벽이슬을 닮은 시인이 되었구려. 온갖 걱정 다 풀어주는 시가 되었구려. 2013. 2. 19 초고 18. 4. 10재고 일반시 2018.04.12
생 일 생 일 맨 날이 같은 날인데도 오늘은 다른 날이란다.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에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란다. 예순 일곱 해 전에 이 세상에 오게 된 날이란다. 낳는 고생은 울 엄마가 했는데 해마다 나보고 축하를 한다. 사느라 고생했다. 살아내느라고 수고했단다. 새 양말을 신으며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을 먹어도 괜스리 기분이 좋은 날이다. 둘러앉은 아내와 자식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까불대는 재롱이 삼삼하고 넉넉하다. 2017. 6. 23 초고 일반시 2018.04.12
벗 꽃 벗 꽃 겨울바람에 흰 눈 내리듯 봄바람에 꽃잎 휘날린다. 네거리 회오리바람 꽃 잎 안고 하늘 가득 오르고 봄 볕 속에 눈 녹아지듯 꽃 비 속에 스러지는 내 마음 2017. 4. 11 암사동 초고 일반시 2018.04.12
서울 서 울 서울 살기가 피곤하다. 발 딛기 익숙하지 않은 아스팔트 당신과 만남의 환영이 머무는 곳 기쁨과 이별을 갈아타던 지하철 입구에서 그래도 살아야지.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흘러간 유행가 물레방아 도는 내역을 듣는다. 그렇구나 여기 서울이 아직은 우리의 고향일 수 있구나. 2017. 1. 16 일반시 2017.01.17
남기고싶은 이름 남기고 싶은 이름 저 하늘에 내 이름을 쓰고 싶다. 그래 그러자 유리창에 푸우 후 입김을 불어 내 이름을 쓰자. 언뜻 사라지지만 눈썰미 좋은 몇 사람은 기억하리라. 내 묘비에 새겨질 나의 이름 앞에 남겨도 될 또 다른 이름을---, 2017, 1, 13 초고 일반시 2017.01.17
우리 형 우리 형 지금은 어디 있을까 그 때 마냥 집으로 가는 길을 서성대고 있을까 ?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때 마냥 피식 눈으로만 웃을까 그 때 우리 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혀 아래 감춘 어떤 비밀이었을까 요리조리 얽혀있는 삶에 시원한 지혜의 묘책을 알려 주고파 오물거렸을까 움직일수록 조여 드는 어찌 할 수도, 어찌 안 할 수 없는 사랑에 지치고 지쳐서 넘어져 있지는 아니할까 그래도, 그래도 지금 우리 형이 이 자리에 있다면 우리의 자랑이 되었을 것을..., 2016. 7. 6 초고 일반시 2017.01.17
꽃씨를 받는 남자 꽃씨를 받는 남자 시월이 익어가는 조그만 화단에 꽃씨를 받는 남자가 있다. 머리 히끗 늙수레한 남자가 여름 내내 오롯이 피어나던 송알 송알 분꽃씨를 두 손 모아 받는다. 바람에 흔들 데구르르 땅에 떨어져서 긴 겨울 기다리다 지치거나 덧없이 썩어질까 한 송이라도 헛된 꽃이 아니 .. 일반시 2016.10.23
학의 승천 학 의 승 천 몇 천날의 바램을 모아 오늘 시월 초 엿세 마침내 난 학이 되었다. 긴 목 드리우고 두리번 거리던 세상 고샅 아스라히 하늘 속으로 날아 오른다. 저 아래 구름처럼 변했을까? 열 여섯 시간을 날아서 만날 사람은 할머니를 닮았을까 고모의 모습일까 꿈에도 오지 않는 사진속의 엄마일까 번쩍이는 바다의 비늘이 날개를 흔든다. 2016. 10. 6 태평양 위에서 일반시 2016.10.23